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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100대 고대 주화(80)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을 두른 코모두스 초상 세스테르티우스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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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100대 고대 주화 (80)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을 두른 코모두스 초상 세스테르티우스
(Commodus Portrait Sestertius with Lion Skin of Hercules)
-로마 191년-

AD 180년,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죽음으로 ‘선한 황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곧 그의 보잘것 없는 아들 코모두스(Commodus)가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황제를 향한 마지못한 아첨을 고스란히 받아드려 자아도취에 빠진 코모두스는 자신만만하게 로마 검투사(Gladiator, 글라디에이터)들이 경기를 펼치는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주로 로마 검투사들은 로마 사회의 가장 낮은 신분을 갖은 전쟁 포
로와 노예, 범죄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황제가 그들과 격투를 벌린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막상 코모두스의 격투 상대는 이미 전투력을 어느정도 상실한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더 나아가 코모두스는 자신을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고 여겼습니다. 192년 여름쯤 로마에 대화재가 발행하였고,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코모두스는 자신이 헤라클레스와 같은 힘으로 로마를 복원시켜 자신만의 식민지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또한 로마를 “전 세계 중 가장 복받은 식민지"로 칭하도록 합니다. 황제의 횡포가 두려웠던 로마 원로원은 코모두스 황제에게 “로마의 헤라클레스”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였고, 도시 곳곳에 헤라클레스처럼 사자 가죽을 두르고 곤봉을 쥔 코모두스 조각상을 새웠습니다. 코모두스가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에도 사자 가죽과 곤봉은 항상 준비되었으며, 검투사 경기를 관람할 때도 그 두가지가 금도금된 왕좌에 놓였습니다. 코모두스의 자만심은 더욱더 커져 1,000파운드(450kg정도)나 되는 금 조각상을 세우게 되는데, 황소들이 끄는 쟁기로 밭을 갈며 로마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합니다. 원로원을 시켜 자신의 통치 기간을 “황금기”라 일컫게 하고 월 명칭 조차 자신의 이름과 별명을 따서 새로이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을 타 로마 조폐청에서는 사자 가죽을 둘러쓴 코모두스 황제의 초상을 모든 로마 주화들에 적용시켰는데, 당시 해당 주화들은 아우레우스 금화(aurei), 데나리우스 은화(denarii), 세스테르티우스 황(청)동화(sestertii), 그리고 아사리우스 동화(asses)입니다. 황제의 초상이 금화와 은화 외에 일반 주화에 적용된 건 로마 역사상 최초였습니다. 주화 뒷면도 코모두스의 “상징”이 된 곤봉이 등장하였고 “황제는 로마의 헤라클레스” 라는 뜻의 [HERCVLI ROMANO AVGVSTO]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중 흔치 않은 특별판도 제작되었는데, 바로 사진에 보이는 주화처럼 곤봉과 활, 화살이 함께 등장합니다. 또한 극히 드물게 황소를 이끌고 밭을 가는 코모두스의 모습이 새겨진 주화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뒤에 숨겨진 끝을 모르는 그의 낭비와 망상은 결국 쓸데없는 의심병이 도저 의심 가는 로마 원로들을 가차없이 처형하였고, 남은 원로들과 관계자들에게도 공포심을 유발하는 위험한 인물이 되어갔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로마는 192년 마지막 날, 황실 경호원들을 이용해 코모두스를 살해하고 맙니다.

1970년 경매에 오른 미품(Very Fine) 세스테르티우스는 800스위스프 랑(SFr)에 낙찰되었고, 2004년에는 비슷한 주화가 Numismatica Ars Classica에서 9,000스위스프랑에 거래되었습니다. 동일한 도안의 아우레우스 금화는 근래 들어 $150,000에 거래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